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사진 가운데)이 24일 부평구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를 찾았다. 원 장관의 뒤로 유정복 인천시장(회색정장 넥타이 미착용)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국토교통부)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부평구 전세사기 피해 지원센터(이하 센터)를 찾았다. 

정부의 지원방안이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지만 사기사건에 대해 “정부가 직접 지원할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원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현재 피해자 모임과 야당 등 정치권 일부에서 주장하는 ‘선 보상 후 구상권’의 방안을 부정하는 것으로 피해자들의 정부에 대한 성토는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다.

원 장관은 이날 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큰 틀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지역 여건에 맞는 세심한 지원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축왕 남모씨(61) 등이 저지른 전세사기에 당한 피해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에 대해 국가가 직접 지원할 수는 없다고 직접 못을 박았다.

원 장관은 “사기당한 피해 금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해서 돌려주고 그게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게 되면 결국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우라는 것으로 선을 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로 안타깝고, 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정부 관료로서) 안 되는 것을 선을 넘어까지 도와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다른 경로의 지원이나 복지 등 방향을 통해 지원될 수 있을지를 고민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의 이같은 코멘트는 현 윤석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양한 방면에서 일어나는 사기 범죄를 국가가 대신 떠안을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선을 넘는 지원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선 보상 후 구상권’ 요구안에 ‘국가대납법이자 포퓰리즘’ 등으로 대놓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오고 있는 만큼 사실상 여당의 이같은 입장이 정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리는 없다.

집값이 하락하는 시기에 겹친 전세사기 피해로 인해 나타난 보증금의 범위를 어떻게 잡고 국가가 책임지고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직은 명확한 사회적 협의가 없기 때문에 “일단은 두고 보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원 장관의 이같은 발언과 입장이 정부 차원 혹은 관료 입장에서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은 아니겠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발언을 두고 ‘시급한 현실을 정작 외면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2030 청년 세대들인 데다 이들 중 미추홀구에서만 벌써 3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것을 너무 가볍게 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3명이 세상을 등진 후에도 20일 건축왕의 사기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한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다 이웃 등의 신고로 경찰과 소방인력이 출동해 이 남성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피해자들 중 이렇게 삶을 비관해 이처럼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행위들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피해자 중 한 명과 아는 사이라고 밝힌 미추홀구 주민 김모씨(49)는 “아무래도 지인 가운데 피해자가 있다보니 그들의 얘기가 계속 들리는데 삶과 생각이 계속 피폐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도 알게 되더라 충분히 극단적 선택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역 활동가들이나 공동체 등에도 전세사기 영향으로 안 좋은 분위기들이 있다고 들었다”며 “피해가 인천에서도 계속 불어날 분위기로 보이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한편 인천시는 미추홀구 전세 피해자 중 소액 임차인 보호를 위한 최우선변제를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이 약 70% 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천시가 집계한 전세사기범의 소유 주택은 모두 3,008세대로 피해가 가장 큰 미추홀구에서는 2,479세대 중 1,523세대가 담보권 실행 경매(임의 경매)에 부쳐졌고, 24일 오전 현재까지는 총 87세대의 매각이 진행돼 완료된 상태다.

건축왕 남씨의 경우 준공된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아 새로운 주택을 계속 지어오면서 현재 미추홀구 피해 사례의 대부분은 ‘근저당 설정에 따른 피해’의 케이스가 가장 많다. 

이런 경우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특히 청년세대의 피해 비율이 높아진다. 다른 통계자료들을 볼 것도 없이 미추홀구 내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3명 모두 2030세대의 청년들이었던 점부터가 이를 인증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는 청년들의 보증보험 가입 수수료를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리스크가 있는 전세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저리대출이 지원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국토부는 경매절차가 마무리돼 퇴거당한 인천지역의 240여 가구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구제방안을 추가로 마련해 조만간 발표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