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존] 기억해야 할 강화의 인물 ‘어재연’

외세 침략 맞선 수호자 신미양요...강화군, 호국 역사 전시 공간 마련

기사등록 : 2024-02-24 18:49 뉴스통신TV 문찬식 기자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 입구에 만들어진 충장공 어재연 장군상 (사진=뉴스통신)

 

(뉴스통신=문찬식 기자) 2023년 11월 강화함상공원이 임시 개장하면서 강화도 호국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강화함상공원 내 소재한 ‘마산 함’에서는 강화 호국 역사의 내용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이렇듯 조선시대 시기 강화군은 한양으로 가는 바닷길을 지키는 수호적인 위치로 서양 외세의 침략에 맞서 용맹한 선조들이 나라를 지켜온 고장이다. 이전 병인양요 시리즈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맞서 싸운 신미양요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 중심에서 활약했던 어재연 장군은 어떤 인물일까? 어재연은 1823년(순조 23)에 아버지 어용인(魚用仁)과 어머니 기계 유씨(杞溪 俞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함종(咸從)이고 자는 성우(性于)이다. 그의 부모는 관직이 없었으나 할아버지 어석명은 인동부사까지 지내면서 관직 생활을 했다.

어재연은 어려서부터 체격이 좋고 힘이 센 장사로 고을에 유명해 1841년 무과에 급제하며 관직 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처음 그는 총융초관부터 광양현감이 됐으나 그 당시 각종 세금을 운반하는 조운선이 악천후로 인해 난파되는 사건으로 문책을 받아 유배됐다고 1852년(철종 3년)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관직 생활 시절 지방관에 부임할 때마다 지방의 폐해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여러 차례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고 백성들에게는 존경받아 내금위장를 비롯한 높은 관직에 올랐으며 1866년 충청도 공충도병마절도사까지 역임했다.

신미양요 당시 순국한 병사들을 기리고자 만든 쌍충비와 격렬했던 전투 흔적 (사진=뉴스통신)

 

이후 1866년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켜 강화도를 침략했을 시기 광성진(현 광성보)를 수비하며 강화도를 지켰다. 또 같은 해 1866년 미국의 제너렬 샤면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서 조선군과 충돌해 제너럴 샤먼호 선원 모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빌미로 삼아 조선의 개항을 목적으로 1871년 조선을 침략하는 신미양요 사건의 시작을 알렸다. 미국은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를 필두로 군함 5척을 동원해 나가사키로부터 출항해 조선의 해양을 탐측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강화해협까지 침범하게 됐다.

이에 조선 정부는 협상을 진행해 나섰지만 결렬로 인해 강화도 광성진에서 포격전이 시작됐다. 조선 정부는 위급한 상황에 따라 어재연을 진무 장군 자리에 올려 강화도에 파견해 맞서 싸우도록 했다.

미 함대는 조선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초지진을 비롯해 계속 전진했으며 당시 조선을 병인양요를 계기로 서양에 대한 척화론 정책을 고수해 온 입장이라 항전을 결정했다. 서양 문물의 화력 차이로 조선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3명의 전사자와 10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으나 조선은 어재연 장군의 전사를 비롯해 필사적으로 싸우며 모두 전사했다. 하지만 미국은 조선 정부가 개화의 의지가 없고 화력을 전부 소진해 철수를 결정하며 신미양요가 마무리됐다.

신미양요 격전지이며 당시 쓰였던 초지진 화포 (사진=뉴스통신)

 

이후 광성보 전투의 공로를 인정받아 충장이라는 시호를 하사받고 또 그의 아우인 어재순도 함께 싸워 이조참의에 추증됐다. 이후 흥선대원군 집권기에는 척화를 본보기로 삼아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킨 영웅으로 추대됐다.

2023년 10월부터 12월까지 신미양요의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고 어재연 장군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인천 강화전쟁박물관에서 ‘어재연 구국의 길을 걷다’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어재연·어제순 형제의 내용이 담긴 ‘쌍충 집’부터 당시 쓰였던 무기를 통해 강화의 역사적 인물을 입증하는 기회를 가졌다.

현재 광성보에는 손돌목·돈두 돈대와 안해루가 위치하며 당시 쓰였던 포를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또 어재연을 기리기 위해 2기의 순절 비인 쌍충비(雙忠碑)와 전쟁 당시 순국자들의 합장 무덤으로 전해지는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이 조성돼 있다.

또한 초지진에는 신미양요의 격전지였던 설명이 게시돼 있으며 당시 쓰였던 화포를 복원해 전시돼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의미는 과거에 대한 내용으로 현재 또는 미래를 교훈으로 삶는 것 중 하나다.

러·우 전쟁 등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대한민국도 자주적인 힘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당시 열약한 화력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신미양요를 떠올리며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으로 반면교사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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