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기자
(뉴스통신=배영수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노무자들의 사택으로 쓰인 부평구 ‘영단주택(산곡동 87번지 소재)’이 재개발에 따라 철거가 불가피해지면서 부평구가 이를 기록물로 남기기로 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최대한 보존한다는 방향으로 잡았다. 21일 부평구와 부평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 등에 따르면, 박물관은 영단주택 관련 조사를 마치고 학술 총서 ‘산곡동 87번지, 부평 영단주택 1·2권’을 발간했다.
영단주택은 일제강점기이던 1941년 7월 설립된 ‘조선주택영단’이 노무자와 기타 서민 주택의 공급을 목적으로 건설한 노동자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주택영단은 인천 외에 경성(서울)·청진·평양·부산 등에 1천호 이상의 영단주택을 건립했는데, 인천 산곡동 영단주택의 경우 일제강점기 부평의 군수기지화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특히 조병창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가족 단위로 주택을 임대해 거주하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었다가, 훗날 일본군 무기 제조공장인 조병창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에게 임대용 주택을 공급할 목적으로 건설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따라서 영단주택은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생활상이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물관 측은 이번 조사를 통해 영단주택 40개 호실이 조병창 개별 노동자 240명의 집단 합숙소로 활용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박물관이 발간한 이번 학술총서는 시 공공도서관과 유관기관에 배포되고, 부평역사박물관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전자파일 형태로 제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영단주택이 도시 재개발사업으로 내년 전면철거될 상황임을 감안해 지난해부터 재조사를 진행해 철거 전 모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4년 개관 당시 첫 지역조사사업으로 ‘산곡동 노동자 주택’ 출간 이후 보완해 완성한 영단주택 2번째 학술 총서다. 총서 1권은 영단주택의 역사·건축·실측·민속을 주제로 했고, 2권은 구술·에세이·사진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부평구는 또다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역사가 남아있는 ‘미쓰비시 줄사택(부평2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에 대해서는, 시민사회 등과의 소통을 통해 보존을 위한 문화재등록 절차를 추진키로 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이 관리하는 군수물자 공장인 미쓰비시 제강 인천제작소의 강제동원 노동자의 합숙소로 쓰인 곳이다. 노동자 대부분이 강제 동원된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만큼, 강제노역자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문화유산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과거 부평구는 “주민 편의시설과 행정복지센터를 건립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2018∼2019년 2차례에 걸쳐 미쓰비시 줄사택 9개동 가운데 3개동의 철거를 강행했고, 이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강력한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평구는 2020년 나머지 6개 동 가운데 4개 동도 추가로 철거한 뒤 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사업을 강행하려 했다. 그러자 이번엔 문화재청이 이를 가로막았다.
당시 문화재청은 “역사적 의미는 물론 연구가치로도 충분한 흔적을 굳이 헐어 없애야겠냐”며 부평구에 보존 권고를 내렸고, 부평구는 이에 모든 상황을 중단하고 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해당 협의회는 역사·도시·건축 분야 전문가와 주민, 공무원 등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협의회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5차례의 논의를 거쳐 정책권고안을 확정, 최근 구에 전달했다.
정책권고안에는 현재 남아 있는 줄사택 6개 동을 최대한 보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미쓰비시 줄사택에 대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해 체계적인 보존·활용 및 정주환경 개선 방안 등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함께 담겼다.
부평구는 이러한 정책권고안을 수용 추진하고, 줄사택 맞은편에 있는 1,300여㎡ 규모의 터에 대해서는 주민 편의시설 조성을 전제로 추가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부평구는 추가 철거에 대한 고집은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듯한 모습이다.
4개 동은 반드시 보존한다는 전제를 세웠으나, 문화재 시설 등록에 따른 필수시설인 주차장 확보를 위해 2개 동을 철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 사유는 있으나 그간 이 사안에 대한 지역사회 반발을 생각하면 논란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